세탁기 추모식
詩 최마루
하아!
그러니까 만18년 전
예쁜 아내를 따라온 수십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동안 소모품이었던 동무들은 불식간에 거의 사라졌고
꽤나 친했던 텔레비전은 9년 전에 사망해버렸습니다
평소엔 몰랐지만 소처럼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해주던 세탁기가
며칠 전에 전원을 차단하더니 조용히 제 목숨을 다해버리더군요
문득 세월의 흐름이 무색하던 순간
내 키보다 훌쩍 커버린 아들과 그의 주검을 정리하는 심정이
여느 때와 달리 참으로 애잔만 해져갔습니다
이 녀석 때문에 거추장스러울 세탁물들이
여태껏 때깔을 자랑해왔는데
이제 새로운 놈을 맞으려니 적응이 쉽진 않을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무상의 삶에 헤어지고 만남이 무생물이든 간에
다분한 인생에 적절한 습관인지도 또 모를 일이겠습니다
* 18년 전 어여쁜 아내가 혼수로 귀하게 데리고 온
참 잘생기고 다부진 삼성세탁기란 녀석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제 역할을 못하더니 계속 잠만 잡니다
고쳐 쓰려다가 웬만한 동물의 수명까지 채웠으니 그만 놓아주어야겠다
싶어서 2015년 12월21일 저녁 7시경 연을 떼었습니다
하지만 트럭에 실려 가는 고놈의 형상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니
가슴 한 켠이 그만 애잔해짐이 또한 만만치 않더군요
생애에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인연이 닿는 모든 존재에게로 향하는 안타까운 심경은
참으로 세심하다 못해 간혹 애틋함이 아릿하게만 서리웁니다
☆ 글쓴이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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