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시인 최마루의 감성소리
자장면을 짜장면이라 표기해도 표준어에 준한다는 발표를 보고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 스물 거려서 마음이 잠시나마 아릿했습니다
아마 제가 고등학교 일학년 여름방학이었던 같군요
당시 아버지는 집에서 멀지 않는 곳에 조그마한 가구공장을 운영하셨습니다
오랜동안 나름대로 경영은 하셨지만 전국의 소매상 가구업체로 납품한 후
자금회전이 잘 되지 않아 금전적으로 항상 힘들어 하셨습니다
사남매중 제가 장남이다 보니 집안 사정을 세세히 잘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당시만 해도 짜장면 한 그릇 먹기가 꽤나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저 역시 지방 대도시에서 살았지만 요즘과는 달리 일 년에 어쩌다 한두 번이면
잘 먹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분명한 것은 궁색한 게 아니라 요즘과 달리 소비보다 너도 나도 저축하던 시대였고
은행금리 또한 높아서 한결같이 잘 살아보자는 70년대말 80년대초 슬로건으로
당시 분위기상에 새마을운동의 마지막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시절만 해도 짜장면은 그야말로 특별한 날에만 먹던 대표적인 음식이었지요
뭐 생일이나 졸업식 입학식 큰 상을 받는 날등이었습니다
요즘처럼 흔한 김밥집이나 치킨집 피자가게 족발등은 아예 없었으니
김밥 하나도 소풍날이 아니면 구경하기 힘든 음식이었답니다
오죽했으면 어른이 되어 돈을 벌면 죽을 때까지 짜장면만 사먹겠다고
작은 가슴에 다짐하고 또 다짐을 했겠습니까
이야기가 잠시 빗나갔네요
그러니까 여름방학 어느 날 오후 네 시경
평소 과묵하시던 아버지가 손수 집으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갑자기 짐을 차에 실으려니 일손이 부족하다며 난생 처음으로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여느 부모님과 같이 부모님께서는 우리 사남매에게는 절대로 허접한 일들을
시키지 않으셨지요
학생은 열심히 공부하고 건강하게 자라서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되라고만
주문하셨답니다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당시 교련복으로 재빨리 갈아입고 공장으로 막 나서려는데
갓 중학생인 남동생이 저를 따라왔습니다
혹 다칠까봐 오지 말래도 갖은 재롱을 피우며 저를 따라오더군요
그래서 안전사고 때문에 일하는데 가까이 오지 말라고 당부한 뒤 공장에 들어서니
아버지와 몇 분의 직원들께서 짐을 많이 옮긴 상태였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특별한 호출로 달려갔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해서
머리를 끍고 있었지요
그런데 우리 장남이 아버지 공장에 오랜만에 왔다면서 짜장면 한 그릇 먹고
집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라며 중국집으로 전화를 하시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곧 저녁이고 일부러 그러실 필요는 없다면서 사양하며 돌아서는데
마침 뒤에 서있던 동생 녀석의 실망하는 눈빛을 보았지요
마지못해 아버지의 향응을 즐겁게 받기로 하고 나는 잠시 공장내부에서
재빠르게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동생은 의자에 앉아 아주 신이 났더군요
목을 빼놓고 출입문만 보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아버지께서는 술만 드시지 않으면 천사같은 분인데 술만 드시면
평소와 달리 사람이 매우 험악해지셨지요
한마디로 주사가 아주 고약했습니다
아마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고 그놈의 미친 물때문에
많은 세월동안 아버지와 크고 작은 마찰로 저는 가슴에 상처를 심하게 얻어버렸지요
아! 또 얘기가 빗나가버렸습니다
조금 전 소주 한 병을 마시고 글그림을 그려보니 저도 취하는군요
하지만 평소에도 싫었던 아버지의 골치 아픈 주사를 저는 아니 닮았습니다
자! 그럼
글속 화면으로 짜장면 그릇이 탁자에 올려져있는 곳으로 이어갑니다
곧이어 배달된 짜장면을 보니 저의 위장도 신명이 났습니다
침 속에 모든 아밀라제의 환희와 그 특유한 짜장면의 향기는 저의 미각을
환장하게끔 하더군요
자리를 잡고 거창하게 비벼서 한 젓가락을 먹으려는데 동생 녀석은 눈물까지 보이며
벌써 머리를 박고 면을 마구 마구 흡입하는 것 이었습니다
순간이었지만 가히 충격 자체였지요
천성이 착한 아우였고 수줍음이 많은 녀석이었던지라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여태 말 한마디 못했을까 생각하니 제 마음이 너무나 아파서 아니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아서 힘없이 젓가락을 놓아버렸습니다
아버지도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다가 이런 동생의 모습을 보시더니
마음이 불편하신지 밖으로 나가버리시더군요
당시 칠팔십 년대 짜장면 보통이 요즈음 곱배기 수준으로 양이 꽤나 넉넉했지요
그 사이 동생의 그릇은 거의 다 비워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맛있게 먹는 아우의 모습을 보니 제 나름 기분이 흡족해서
갑자기 속이 안좋다는 핑계로 짜장면을 서스럼없이 양보했지요
동생은 두말없이 그 많은 짜장면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걸 보고 저 많은 양이
조렇게 조그만 녀석의 배에 어떻게 다 들어갔을까 하고 내심 놀랐습니다
다 비워진 짜장면 그릇을 멀찐하게 바라보다가 동생의 얼굴이 얼마나 평온하던지
아니 그렇게 행복해하던 표정은 처음 보았지요
배를 만져보니 꼭 두꺼비 같았지만 동생이 좋아하니 저 역시 배가 불러 즐거웠지요
동생을 앞세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평소에도 감수성이 매우 예민했던 나는
그날 슬픈 시를 알아버렸습니다
사실 수 십 년이 흐른 기억이지만 동생 자신은 아마도 모르고 있을겁니다
그리고 굳이 들추어내고 싶은 얘기도 아니구요
어떻게 생각하면 우울한 기억이지만 당시에 짜장면 가격이 삼백원 정도였으나
모두들 나름대로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자판기에 커피값이네요
그새 제 머리카락에도 어느덧 서리가 내렸으니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른이 되면 매끼니를 짜장면으로 먹겠다던 각오는 이미 사라졌고
요사이 아무리 맛좋은 짜장면이래도 엄청난 추억의 맛이 예전같지 않아서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시대의 맛에 밀린 건지 아이러니하게도 살짝 궁금합니다
요즘은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짜장면 비슷한 인스턴트식품들이
대량으로 넘쳐나는 시대에 짜장면에 얽힌 과거의 흐릿한 기억들이
혹여 불혹 이후의 나이를 너머 가시는 여러분
비단 저만의 알싸름한 추억은 아닐테지요
<2011년 8월 31일 오후 3시경 표준어 변경에 대한 인터넷 뉴스를 보고>
☆ 글쓴이 소개☆
*대한민국시인 文名최마루님의 글입니다.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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