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
詩 최 마루
신내림조차 이런 글문내림에는 대적할 수가 없지요
한시대의 작가로 산다는 게 얼마나 고독하고 힘든지를
세상 사람들이 가히 몇이나 알까요!
때로는 밤잠을 지워가며 음절 하나에도 피가 마를 때
정히 왜 이러나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제 아무리 보아도
병중에 가장 무섭고 지독한 병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 중대한 동시의 묵직한 병은
정신과 육체에 매일 매초를 가만 두질 않으니 말이지요
예로 머리를 감다가 시어가 양수처럼 터지면 즉각 반응으로
종이와 연필을 필히 찾아야합니다
눈이 따가워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따위는 잊은 지 오래지요
한때는 한창 글문이 무르익을 당시 뛰어난 발광체의 시어들이
메뚜기처럼 머릿속을 분주히 오르면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내팽개쳐버리고 바로 바보가 된 적이 부지기수로 많았습니다
지인들조차 안타까워했으니 아마 죽어야 낫는 병이겠지요
그래도 한 삼십년 가까이 만성이 되니 이제 나름은 머릿속으로
압축법을 터득해버렸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연찮게 찾아온 인연이래지만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 지랄같은 병으로 제 생은 지독한 고독에야 마감할 것입니다
아무도 상관없겠지만 만약 만약에
내 죽어서도 누군가 나를 기억하거든 종이와 연필을 주세요
☆ 글쓴이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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