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컵
詩최마루
왜진 모서리에
공허의 기운을 감싸 안은 채
빈 컵의 그림자가 외로이 홀쭉하다
직감으로 보아 가난의 설움이
컵의 언저리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있었던 게다
먼데
나직이 빈 잔이 부딪히는 소리에
빈 컵도 지레 부끄러운 손사레를 치다가
제 가벼운 무게에 놀라 나자빠진다
결국
혼자서 지랄하다가 쓰레기통에 쳐 박혀도
아무도 관심 건네는 존재마저 없으니
세상으로 초라히 태어나
무형의 얕은 존재감이란 게
이럴 땐
그저 난감할 수 밖엔 별도리가 없는 것 같다
허전함과 실망과 자괴만이 출렁이는데
오욕에 차버린 빈 컵 주위로
자그마한 소외감이 타박타박 몰려온다
그래
저따위 모양대로 살아가는 거 보다야
컵으로서의 멋진 일생을 마무리해야겠지
오래지 않은 각오에 힘입어
과감히 몸을 수직으로 내던진다
빈 컵이 깨어지는 우둔한 소리에
그림자 하나가
짧은 메아리를 남기며 유유히 사라진다
주위에
비웃어주는 사물이 하나도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마지막 유형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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